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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는 인생이다, 몬티 라이먼 - 피부를 매개로 살펴본 우리의 정체성

인간을 정의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데카르트는 그의 저술들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것이 우리를 정의한다'고 말하려 했고, 반대로 어거스틴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정의한다'고 말하려 했다. 혹자는 '우리가 먹는것이 바로 우리다'고도 한다. 각각의 문장이 가진 무게가 느껴지는가? 결코 그냥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이다.

피부과학자이자 <피부는 인생이다>의 저자인 몬티 라이먼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타자와 구분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이번 책에서 피부를 매개로 하여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 그리고 영적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을 조명한다. 먼저 '인간은 경이롭다'라는 클리셰에 팩트를 꾹꾹 눌러담아 주신다. 하물며 흔하디 흔한 국밥이라도 꾹꾹 담아주면 기분이 좋은데, 인간의 경이로움에 관한 국밥인심을 한장씩 떠먹을 때마다 피부를 타고 퍼져나가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피부에 관해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 많이 있으며,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도 깊이 있게 담지는 않고, 오히려 서둘러 책의 후반부로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놀라운 피부의 능력

 

 

 

이 책의 후반부(7장 이하)에서 그는 피부와 그 자체의 기능을 매개로 전반부에서 약하게 다뤘던 주제인 '형이상학적 피부'를 다룬다. 인간은 미모를 가꾸고, 노화를 말할때 피부를 떠올리기 쉽다. 피부는 우리의 가장 바깥에서 가장 먼저 보여지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촉각 또한 그 자체로 사회적 상호작용에 있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사실은 피부가 심리적,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다른 존재, 다른 사람을 인식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를 정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피부는 인생이다> 312p

 

'다른 존재'를 정의하는 가장 원초적인 (그리고 위험한) 방법은, 아마 보이는 '다름'으로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밖으로 드러난 '다름'은 '태초부터 드러난 인류의 적개심'(312p)의 타겟이 되어왔다. 질병으로 드러난 다름, 문신에 새겨진 계급, 재산 따위의 다름, 피부색의 다름. 시선 아래 놓인다는 것은 때론 두려운 일이다. 본다는 것은 힘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보인다는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따라서 통제할 수 없는) 영향을  낳기 때문이다. 이 영향은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가장 바깥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쉽게 바꿀 수 있지만, 가장 먼저 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피부들에 관한 이야기를 저자는 풀어내고 있다.

 

피부를 통해 일어나는 사회적 상호작용 반대편에는 눈이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보려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에서 빠져 있던, 오히려 저자가 일부러 숨기는 듯 했던 한가지를 포착할 수 있었다. 바로 '눈'이다. 두개의 얼굴을 가진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어떤 것은 태우고 어떤 것은 치료하는 사람의 '눈'. 피부는 인간의 가장 바깥에 있기에,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눈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었고, 그래서 누군가는 이카루스보다 더 슬픈 비극을 살아야만 했다. 저자는 피부를 매개로, 피부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눈과 그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음의 죄악으로 인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우리와 구분하는지 묻고있는것 같다. 우리는 무엇으로 타인을 우리와 구분하는가? 과연 피부인가? 아니면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재산, 계급, 인종, 외모 같은 것인가? 그것이 우리 마음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누가복음> 18:11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베드로전서> 1:16

 

피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꾸기 충분한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동생이 성형수술 하려는 것을 각종 이유를 들어가며 반대했으리라. 지금은? Skin in the ga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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